[조선일보] 명문고택, 운조루 -조용헌

운조루 0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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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한 뒤 상당 기간 시달려야 했다. 책을 낸 뒤 이처럼 시달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시달림은 주로 좌파진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왔다. “한국에 무슨 명문가가 있단 말이냐? 한국에 무슨 사회 지도층이 있단 말이냐? 자다가 일어나 봉창 뜯는 소리 하지 말아라!” 이런 조롱과 비판에 대해 필자가 들이댔던 대응 논리의 근거는 오래된 고택(古宅)이었다.


현재까지 고택이 남아 있는 집안들은 주변의 존경을 받아왔던 명문가임이 분명하다. 존경받는 집안이 아니었다면 동학농민혁명이나 6·25때 고택이 모두 불타버려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리산 밑에 있는 구례의 대저택 ‘운조루’(雲鳥樓)만 하더라도 여순반란이나 6·25때 불에 타 없어졌어야 했다. 대지주 집안이었으니까. 그러나 지리산 빨치산에 가담했던 이 집안의 머슴들도 자기 상전 집이던 운조루를 불태우는 것은 적극 반대했다고 한다. 운조루 출신의 머슴들이 반대하니까 다른 빨치산들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운조루는 적선을 많이 한 덕가(德家)로서 그 평판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리산 피아골과 노고단은 빨치산 근거지가 있던 곳이었는데, 바로 그 근처 동네에 있었던 지주 저택 운조루가 불타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조선 중기부터 계속해서 부잣집이었던 해남윤씨들의 녹우당(綠雨堂)도 마찬가지이다. 이 집은 ‘삼개옥문 적선지가’(三開獄門 積善之家)로 불렸던 집안이다. 가난해서 세금을 내지 못한 지역민들이 감옥에 갇혔는데, 그때마다 세금을 대신 내줘 세 번이나 감옥에서 꺼내줬다는 일화이다. 6·25때 좌·우 어느 쪽이 세력을 잡아도 이 집안의 덕망과 카리스마를 훼손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엎어져도 윤가(尹家)요, 뒤집어져도 윤가”라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고택을 보존하고 있는 명문가는 이런 관용과 적선을 통해 좌파의 도전에서 살아남은 집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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