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필자가 많은 독자들로부터 받았던 질문이다. 그 기준은 고택(古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수백년 된 고택을 유지, 보존하고 있는 집은 일단 명문가일 확률이 높다. 왜 고택을 가지고 있는 집이 명문가인가.
첫째, 고택이 있으면 일단 그 집은 역사가 있는 집이다.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역사의 검증을 거쳤다는 사실을 뜻한다. 동학, 6·25와 같은 난리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인심을 못 얻고 도덕성에 하자가 있었던 고택들은 대개 불에 타거나 훼손되었다. 특히 6·25 때 평소에 쌓아 두었던 개인감정이 많았던 사람들에 의하여, 또는 머슴 출신의 좌익들에 의하여 주인집이나 부잣집 고택들이 불타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고택들은 이런 검증을 거친 셈이다.
둘째, 조선시대에 지어진 수십칸 규모의 기와집들은 단순히 돈만 많다고 지을 수 있는 집들이 아니었다. 그 집안에 이름을 남긴 뚜렷한 인물이 배출돼 지은 경우가 많다. 경주 양동마을의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논산의 명재 윤증, 해남의 고산 윤선도와 같이 그 집 조상 중에 학문과 도덕으로 현달한 인물이 있어야만 그 고택이 중간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조상의 명성이 고택 보존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고택이 유지되는 집들은 대개 전국구(?) 명성을 날린 조상을 둔 경우가 많다.
셋째, 한국의 주거공간이 아파트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활에 불편한 고택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은 긍지와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집안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이 없었더라면 벌써 고택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고택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뚝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명문가는 긍지와 자존심이 없으면 유지 못한다.
넷째, 고택이 있다는 것은 재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 수천평의 부지와 수십칸 규모의 기와집을 유지할 수 없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충무공 고택 부지를 문화재청에서 매입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충무공 종부가 돈에 시달려서 경매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명문가 후손으로서 고택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