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코리아] 품이 너른 평온한 집, 구례 운조루

운조루 0 46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운조루의 고아한 자태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운조루의 고아한 자태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구름 위를 나는 새도 돌아오는 집’. 운조루(雲鳥樓, 국가민속문화재)는 중국 시인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의 “구름〔雲〕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鳥〕들은 날기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라는 구절에서 딴 글자로 이름했다. 구름처럼 너그럽고 포근한 고택은 베풀고 나누는 운조루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운조루 앞에 드넓게 펼쳐진 논

운조루 앞에 드넓게 펼쳐진 논


운조루는 1776년(영조 52) 류이주가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은 물론, 고택에 스민 정신이 면면히 전해온다. 류이주 선생은 낙안에서 가까운 곳에 집터를 살펴보다가 뒤에는 지리산이,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는 명당에 운조루를 건축했다. 수원유수로 재직할 때 수원 화성 축조에 참여한 만큼 건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이다. 운조루를 짓는 7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으리라. 운조루는 규모가 제법 크지만,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자태가 돋보인다.


운조루유물전시관에 있는 타인능해 뒤주 실물

운조루유물전시관에 있는 타인능해 뒤주 실물


솟을대문 앞에 커다란 뒤주가 놓인 집이 운조루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새긴 뒤주는 류씨 가문 대대로 이어오는 보물이다. 쌀 2가마니 반 정도 들어가는 뒤주에 항상 쌀을 채워 곤궁한 이웃이 가져가게 했다. 타인능해는 ‘누구나 열 수 있다’라는 뜻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당신을 이해한다는 공감과 타인을 향한 배려가 자연스레 배어난다. 운조루 1년 소출의 20%에 해당하는 36가마니를 이웃에게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뒤주 실물은 운조루유물전시관에 있다.


대문 양옆으로 늘어선 행랑채

대문 양옆으로 늘어선 행랑채


고택에 들어서자 꾸미지 않은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대문 양옆으로 긴 행랑채가 눈에 띈다. 일하는 사람이 머무르던 곳으로 서쪽 7칸, 동쪽 11칸이다. 행랑채 한쪽 끝에 죽은 사람을 석 달 동안 모셔두는 가빈 터의 흔적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문상객이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위풍당당한 기품이 흐르는 사랑채

위풍당당한 기품이 흐르는 사랑채


운조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채는 여름에 해를 가리고 겨울에 바람을 막는 들어열개가 있다. 문짝을 한껏 올려 고정하면 내가 집 안에 있는지, 자연 속에 있는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운치를 즐기기 좋다.


10대손 류정수 씨가 사랑채 누마루에서 그윽한 차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10대손 류정수 씨가 사랑채 누마루에서 그윽한 차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현재 운조루는 10대손 류정수 씨가 지키고 있다. 그는 사랑채 누마루에서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하며 그윽한 차를 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오봉산과 계족산의 부드러운 곡선과 처마가 마음을 다독인다. 선조들은 이 풍경을 두고 얼마나 많은 글을 지었을까. 매천 황현 선생은 “서헌은 객을 머무르게 하는 가장 좋은 곳으로 비와 같은 솔바람 술 위에 파란을 일으키네”라며 운조루의 정취를 예찬했다.


안채 다락은 집안 여인들이 바깥 풍경을 보며 쉬던 공간이다.

안채 다락은 집안 여인들이 바깥 풍경을 보며 쉬던 공간이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곳에 부엌이 있다. 운조루는 굴뚝이 낮은데, 밥 짓는 연기가 높이 솟지 않게 함이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섬세한 건축이다. 여성이 생활하던 안채는 ‘ㅁ 자형’으로, 돌계단이 높아 고아한 기품이 서린 듯하다. 안채 다락은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보지 못하던 집안 여인들에게 탁 트인 휴식 공간이자,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놀이터였을 듯하다. 운조루는 항상 열려 있으며 입장료는 어른 1000원, 학생(10~18세) 700원이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운조루유물전시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운조루유물전시관


고택 근처 운조루유물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자. 류씨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유물과 고택에 있던 현판, 타인능해 뒤주 실물을 전시한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물과 기록은 당시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동 이익회가 쓴 ‘운조루’ 현판

고동 이익회가 쓴 ‘운조루’ 현판


강직한 필체가 눈길을 사로잡는 귀만와(歸晩窩) 현판은 류이주 선생의 친구인 서예가 직암 윤사국의 글씨다. 운조루 현판은 운조루 3대 주인 류억과 막연한 고동 이익회의 글씨로, 유연한 미가 흐른다. 소장고에 있는 수분실(隨分室) 현판의 뜻도 되새겨볼 만하다. ‘자기 형편에 따라 절제 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전한다. 전시관에 걸린 영정 속 류이주 선생의 표정이 인자하다. 사랑채 누마루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뜰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넉넉한 인품이 느껴진다. 운조루유물전시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명절 당일, 임시공휴일 휴관), 관람료는 없다.


Comments

Now

현재 [더코리아] 품이 너른 평온한 집, 구례 운조루

댓글 0 | 조회 47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운조루의 고아한 자태‘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구름 위를 나는 새도 돌아오는 집’. 운조루(雲鳥樓, 국가민속문화재)는 중국 시인 도연명이 쓴 〈귀거… 더보기

[경북일보] 풍수썰전 - 운조루 (박성대 교수)

댓글 0 | 조회 57
'하늘이 아껴뒀다가 내리신 땅' 물이 모여 감아 도는 부자 터류이주, 운조루 고택의 창건주운조루(雲鳥樓)는 호남지방에서 보기 드물게 조선시대 양반집 건축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는 건… 더보기

[정책브리핑] 이웃과 더불어 사는 종가들의 삶

댓글 0 | 조회 66
운조루 뒤주는 일명 ‘타인능해(他人能解)’로 유명하다.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라는 의미로 주민들이 뒤주에 담긴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했다.곳간 뒤주 구멍에 ‘타인능해(他… 더보기

[충남일보]200년 전 배려의 미학 ‘타인능해’

댓글 0 | 조회 62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 수 있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쉬지 않고 3천 리를 달려오던 백두대간이 숨을 멈추고 정수를 이룬 지리산. 어머니 같은 지리… 더보기

[헤럴드경제] 깊어가는 가을, 고택에서 사극 같은 하룻밤

댓글 0 | 조회 31
문화류씨의 고택 구례 운조루의 주인은 고려 태조 왕건의 오른팔 류차달의 후손이다. 조선 영조때 문·무관을 섭렵한 귀만와 류이주(柳爾胄,1726∼1797)는 대구에서 살다가 구례 지… 더보기

[비즈니스포스트] 최고 명당 유부자댁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

댓글 0 | 조회 41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유부자댁은 최부자댁처럼 이백 년 가까이 대대로 유복하게 지내며, … 더보기

[AI타임즈] 구례 운조루 고택 과 ‘코로나 위기’ 극복의 지혜

댓글 0 | 조회 38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세상이 달라졌다. 자연 세상사는 법도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주위사람들의 애경사에는 직접 찾아가 같이 시간을 보내며 위로와 덕담을 건네는 것이 미덕이었다. … 더보기

[예술세계] 타인능해 그 아름다운 정신

댓글 0 | 조회 36
타인능해, 그 아름다운 정신대한민국 풍수명인 김상휘 박사고귀한 집이다.수 세월 동안 험한 역사가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집은 여전히 선비의 기품이 서려 있다.부엌 한쪽 그늘 속 낡고… 더보기
언론보도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