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일보]200년 전 배려의 미학 ‘타인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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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연지와 행랑채 (사진=김준완)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 수 있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쉬지 않고 3천 리를 달려오던 백두대간이 숨을 멈추고 정수를 이룬 지리산. 어머니 같은 지리산 노고단을 배산으로, 은빛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임수로 삼아 구례 오미리로 들어서면 운조루란 큰 기와집이 나타난다. 


조선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였던 유이주가 세운 99칸 저택이다. 경주 최부잣집이 영남을 대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표상이라면, 운조루는 호남을 대표한다. ‘타인능해’는 운조루가 발원지다. 


운조루는 우리나라 최고 명당 중 하나로 꼽힌다. 풍수지리 3대 진혈인 금구몰니, 금환락지, 오보교취라는 3대 생기혈이 다 모인 곳이다. 그러나 운조루에 이미 200여 년 전 로타리 정신이 담겨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운조루가 특히 빛나는 것은 나눔의 정신이다. 99칸 저택의 곳간 앞에는 ‘타인능해’라는 글이 새겨진 뒤주가 있다. 뒤주 위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놓아두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주인이 직접 쌀을 주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알아서 가져가도록 했을까?? 



가난한 사람이 주인에게 직접 쌀을 받아 가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곳간 채에 설치한 뒤주는 주인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쌀을 가져갈 수가 있다. 나눔의 정성도 훌륭하지만, 받는 이의 심정까지 배려했으니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집에서는 한 해 200가마의 쌀을 수확했는데, 뒤주에서 나가는 쌀이 대개 36가마 정도였다고 한다. 1년 소출의 약 20%를 적선과 구휼로 쓴 셈이다. 또 굴뚝 높이를 1m도 안 되게 아주 낮게 만들었다. 밥 짓는 연기가 배고픈 이웃에게 보이지 않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남도 지역에는 수많은 민란이 끊이질 않았다. 운조루는 해방 이후, 여순 사건과 6.25를 겪으면서도 온전하게 보전됐다. 지리산 일대에서 준동했던 빨치산은 부잣집만을 골라 약탈 방화했다. 지주를 처형까지 했으나, 오히려 운조루는 보호했다. 바로 타인능해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운조루는 그런 점에서 진정한 명당이다. 


외로운 시대다. ‘배려의 미학’이 사라지고 있다. ‘돌봄의 손길’도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로 ‘비대면’적 삶이 더 자주 거론되지만, 여전히 우리 속에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하고자 하는 ‘대면’의 욕구가 존재한다. 코로나 위기로 많은 이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지금 사랑과 봉사의 필요성은 더욱 긴요하고 분명해졌다.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선행을 ‘무재칠시’(無財七施) 라고 한다.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고, 칭찬과 위로의 말을 건네고, 따뜻한 마음을 주고, 호의를 담은 눈길을 보내고, 자리를 양보하고, 상대의 속을 헤아리고, 몸으로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누구든, 어떤 처지에 있든,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세상에 베풀 것이 있다. 운은 곧 복이다. 복은 공덕에서 온다. 공덕이란 좋은 일을 하여 쌓은 업적과 어진 덕을 말한다. 많은 공덕을 쌓은 사람은 나쁜 사주팔자도 뛰어넘는다.


‘배려운동 캠페인’을 제안한다. 배려는 함께하는 ‘같이’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세상에 선물이 될 수 있다. 우리 이웃들의 삶과 세상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사람의 손이 두 개인 이유는 한 손은 자기를 위해, 나머지 손은 남을 위해 쓰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자, 당신은 이웃에게 어떤 귀한 선물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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