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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雲鳥樓의 배려심
시인 유응교
가난한 이웃들의 끼니를 걱정하여
쌀독에 쌀을 두어 밥을 짓게 해 주었고
굴뚝을 낮게 만들어 이웃들을 배려했네
낙안읍 군수 시절 읍민을 보살피며
누구나 편안하게 잘살게 하였더니
타지로 발령이 나자 읍민들이 울었다네
안채의 여인들이 바깥구경 할 수 있게
부엌과 안채 끝에 조망창 설치하고
하인들 자유를 주어 원하는 곳 살게 했네
후세를 생각하여 모든 걸 기록하는
농가의 생활일기 백 년을 써 왔으니
만여 수 한시와 함께 길이길이 빛나리!
* 운조루雲鳥樓ㅡ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조선조 상류 주택이며 필자의 종가이다.
행랑채 쌀독에 두 가마니 반의 쌀을 넣어 놓고, 밑에 마개를 돌리면 쌀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쌀독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 라 써 놓았다.
유응교(槿岩 柳應敎) 작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 출생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공학박사, 시인
ROTC 4기 중위, 전북대 공대 건축과 교수 역임
미국 MIT 연구교수, 전북대 학생처장 역임
전북예총 부지회장, 하나로국제문화예술연합회 총재
주요 저서
시집: <그리운 것이 아름답다> 외 9권
동시·동화집: 까만 콩 삼 형제, 별꽃 삼 형제, 기러기 삼 형제, 해바라기 삼 형제, 거북이 삼 형제, 동화 나라 삼 형제, 운조루 삼 형제 등
동시조집, 칼럼집, 유머집, 대학교재 등 총 31권
수상 경력
전북문학상, 전북아동문학상, 새전북문학상(시조 부문)
한국예술문화대상, 전북 예술문화상
해양문학상(바다사랑상), 소년해양문학상
아름다운 우리말 창작대상(동요 부문)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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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응교 시인의 시 '운조루雲鳥樓의 배려심'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응교의 시 '운조루의 배려심'은 단순한 고택의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종가의 전통과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린 기록이다. 운조루는 단순히 집이 아니라, 배려와 나눔의 철학을 담은 삶의 상징이었다. 쌀독에 새겨진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네 글자는 한 시대의 가치관을 압축한다. 가진 것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행위가 진정한 품격이라는 선언이다. 시인은 이를 따뜻하게 복원하며, 고택의 구조와 생활 속에 배어 있는 휴머니즘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유응교 작가가 보여주는 시적 감수성은 언제나 사람을 향한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인간의 마음을 드러낸다. 굴뚝을 낮추어 연기가 이웃을 해치지 않도록 한 세심한 배려, 안채 끝에 창을 내어 여인들이 세상을 바라보게 한 따뜻한 배려, 하인들에게 자유를 허락한 열린 태도는 모두 시대를 앞선 인간 존중의 실천이다. 시인은 이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적 언어로 되살려 오늘의 가치로 전환한다.
그의 시에는 늘 현실과 서정이 동시에 흐른다. 쌀독, 굴뚝, 창문과 같은 생활의 구체는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인간 존중의 기호로 변모한다. 시인은 물건을 통해 사람을 보고, 제도를 통해 정신을 읽어낸다. 그러기에 그의 언어는 단단하면서도 따뜻하다. 아름다움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이 그의 시에 배어 있다.
그의 삶의 철학은 곧 “나눔과 기록”이다. 종가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선대의 정신을 단순히 기념하지 않고, 현재적 가치를 지닌 메시지로 확장한다. 백 년을 이어온 농가 일기는 한 가문의 사적 기록을 넘어, 사회 전체의 정신사로 남았다. 만여 수의 한시는 단순한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 한 세대를 넘어선 정신의 발자취였다. 기록은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길을 여는 행위였다. 그의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운조루의 배려심'은 절제와 균형의 미학을 보여준다. 과장을 배제하고 담담히 사실을 전하면서, 그 속에 흐르는 인간적 온기가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이는 관조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인간과 자연, 제도와 정서를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본다. 종가의 전통을 삶의 철학으로 잇고, 그것을 문학적 언어로 다시 살아 있게 한다.
유응교 시인은 휴머니스트다.
화려한 수사보다 작은 사물에 깃든 인간 존중을 드러낸다. 나눔은 과거의 미덕이 아니라 오늘도 유효한 가치임을, 삶의 풍요는 물질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그의 문학은 역사를 노래하면서 현재를 일깨우고, 전통을 기록하면서 미래를 연다.
종갓집 후예로 태어난 그의 삶은 올곧다. 선대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박제하지 않고, 살아 있는 가치로 녹여내었다. 법과 질서, 문학과 서정을 아울러 한 인간의 길을 걸어온 삶. 그 속에서 우리는 문학이 단순한 미학의 산물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드러내는 길임을 다시 확인한다.
*운조루의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 수 있다”는 뜻으로, 조선 영조 때 류이주 선생이 지은 양반가옥 운조루에 설치된 쌀뒤주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이 뒤주는 가난한 이웃이 직접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한 나눔과 배려의 상징으로, 집주인은 쌀을 채워두고 필요할 때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이 글귀는 이웃의 배고픔을 덜어주기 위한 집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ㅡ 청람 김왕식
[출처] : https://brunch.co.kr/@3cbe431230de42b/4676